얼마 전 정세랑 작가의 <목소리를 드릴게요> 에 관심이 생겼다. 요새 한국 여성 작가에 부쩍 관심이 많이 생기기도 했고, 알라딘을 돌아보다 표지가 너무 예뻐서 그냥 마음이 갔다. 얼마 전 서점에 갔을 때 초입을 조금 읽어보았더니 재밌어서 곧 사든 빌리든 해서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서 드디어 며칠 전 회사 도서실에 갔는데, 검색해보니 신간인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없고 다른 책들은 몇 권 있었다. 그 중에 18년에 출간된 <옥상에서 만나요>가 왠지 끌려서 빌려왔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작가의 책을 정말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괜히 많이 사랑받는 게 아니구나 싶게 모든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웠다. 바로 다음 장에서 무슨 이야기가 펼쳐지게 될 지 전혀 예상이 안 되는 전개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아주 현실적인 이 시대 한국 여성들과 사회의 모습에 기반해 있으면서도 약간 판타지적인 요소가 섞여들어있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다.
모든 이야기가 다 재미있어서 한 꼭지를 꼽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그냥 줄거리를 뺀 간결한 감상을 남기기로. 이야기마다 아주 다른 재미를 주었지만 소설집 전반에서 어떤 연결된 따뜻함이 일관적으로 느껴졌다.
- 웨딩드레스 44 : 44 사이즈가 아니고 하나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44명의 이야기다. 그냥 제목부터, 그리고 구성도 너무 좋았다
- 효진, 이혼 세일 :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물리적 거리가 멀어져 서로가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거나, 서로의 삶의 형태가 달라 더이상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만 같을 때. 그런 때는 누구에게나 그리고 나에게도 다가오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때가 정말로 나에게도 다가와버릴까봐 무섭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계속 이해하고 또 아주 사소하고 예상치 못한 구석까지 신경 쓰고 있을 거라는 것을 담담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 알다시피, 은열 : 화자만큼 나도 이 은열이라는 인물에 대해 엄청난 호기심과 매혹을 느꼈다. 그리고 화자같은 인물이 이 사회 어디엔가도 있겠지 생각하면 왠지 친근하게 느껴진다.
- 옥상에서 만나요 : 이 이야기를 뭐라고 진부하지 않게 설명을 못하겠다. 천재인가? 익살스럽고 다정하다.
- 보늬 : 요새 보늬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경이 쓰인다. 화자와 같이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 영원히 77 사이즈 : 너무 유쾌하고 짜릿하게 웃겼다. 초입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될 지 상상도 못했는데.
- 해피 쿠키 이어 : 제목을 이제 다시 보니 정말 재미있네. 화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우리 사회는 요지경 같다. 나쁘고 또 좋은 방향의 요지경같은 일들을 겪게 되기도 하고.
- 이마와 모래 : 전쟁 종식과 같은 중요 이벤트조차 작은 사고에서 비롯되기도, 그리고 사실 전쟁조차 사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기도 한다는 것과 이 사태에 얽혀버린 이들의 이야기가 좋았다.
하나하나 다 너무 재미있었는데 베스트 셋을 뽑자면? 너무 어려운데... 아주 단순하고도 주관적인 재미를 기준으로 뽑자면 웨딩드레스 44, 영원히 77 사이즈, 해피 쿠키 이어.
친구가 최근에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었는데 아주 재밌었다고 해서 다음엔 얘를 읽어봐야겠다. 간만에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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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장편소설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장편소설에 새로운 활력을 더해준 작가 정세랑의 첫번째 소설집. 결혼과 이혼, 뱀파이어, 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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