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유명해서 주변에서 많이들 읽었던데, 나는 이제야 읽어보았다. 제목만 알고 있었을 때는 정세랑 작가님의 책인지도 몰랐고 그냥 제목을 들었을 때 왠지 마음이 무거워지는 소설일 것만 같은 생각이 대뜸 들었다. 진짜 아무런 정보 없이 내 맘대로 한 생각이다. 그냥.. 내가 교생 실습을 가봤다는 점이 문제인지 여튼 학교나 교사와 관련한 주제가 나오면 딱히 깊은 지식이나 경험도 없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관성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던 중 <옥상에서 만나요> 다음으로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친구들의 평 때문이었다. 성실한 블로거인 내 친구 J가 써놓은 글에서 작가님이 이 책을 오직 쾌감만을 위해 쓰셨다는 말을 발견했고, 너무나 재밌게 읽었다기에 망설임 없이 이 책을 빌려왔다. 읽어보니 정말 유쾌하고, 의도하신 대로 쾌감이 느껴지고, 또 마구 가볍기만 한 이야기는 전혀 아니어서 무척 즐겁게 읽었다. 만약 주변에 책 선물을 한다면 이 책으로 해도 누구나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너무 인기 있는 책이라 나도 늦게 읽은 축에 속한 것 같기 때문에 아직 읽지 않은 사람에게 줘야겠다는 전제가 필요하긴 하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제목에서 전혀 예상할 수 없지만 학교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이다. 안은영은 귀신을 보는 능력이 있는데, 정말 생각치도 못한 무기로 이들을 물리친다. 물리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귀신이 모두 악하거나 살아있는 사람을 해치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안은영에게는 오래도록 몇십년 동안 보아 온 귀신 친구도 있다. 안은영이 사용하는 무기나, 안은영이 사람들에게서 읽는 기운과 에너지의 구체적인 설정은 무척 익살스러워서 웃음이 난다. "에로에로 에너지"를 생각해보면, 나는 학창시절 안은영 선생님에게 요주의 인물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안은영의 일상은 당연히도 고되다.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 어릴 적부터, 자각은 했어도 조금 더 태연하게 '보통 사람인 척' 행동하는 것이 능숙하지 못했던 청소년기를 거친 안은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과 마주하지 않는 편안한 루트를 택하지 못하고 간호사가 되었다. 다른 직장들보다 훨씬 이런 저런 사연을 가진 영혼들과 마주칠 일이 많은 병원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다. 아무도 보상해주거나 알아주지조차 않지만 안은영은 선한 의지로 능력을 써왔고, 병원에서 호된 나날을 보내다 학교 보건교사가 되었다. 학교 중에서도 기운이 심상찮은 곳을 골라 왔으니 안은영은 능력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힘든 일도 많이 겪었으나,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불행이나 고통을 단호하게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여튼 안은영은 학교에서 자신의 능력을 얼떨결에 알아버린 몇몇 학생들, 그리고 한문 선생님과 학교생활을 해나가게 된다. 한문 선생님은 안은영에게 모종의 이유로 기운 충전의 원천이 되는데 이것도 설정이 무척 재미있다. <옥상에서 만나요>에서 한 생각이기도 한데, 우리나라의 어떤 토속적인 미신을 활용한 설정을 책 속에 굉장히 재미있게 풀어내시는 것 같다. 여튼 보건교사 안은영은 한문 선생님, 그리고 학생들과 학교에서 아기자기하다가도 매우 위험해지기도 하는 각종 에피소드에 얽히면서 학생들과 학교를 지켜낸다. 이런 좌충우돌 귀신퇴치 판타지소설에서조차 여러 이야기를 거치며 느껴지는 따뜻함이 있다는 것도 좋았다.
이 책이 정유미 배우 주연으로 드라마화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찾아보니 넷플릭스로 올해! 2020년에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정유미 배우가 연기하는 간편하게 묶은 머리에 꽃무늬 옷을 입고 교내를 때로는 어슬렁어슬렁, 때로는 분주하게 뛰어다닐 보건교사 안은영의 모습이 벌써부터 정말 잘 그려진다. 나는 영 드라마를 챙겨보는 체질이 아니지만 이 드라마라면 꼭 챙겨 보게 될 것 같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1643531
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권. <지구에서 한아뿐>, <덧니가 보고 싶어>, <이만큼 가까이>, <재인, 재욱, 재훈> 등의 소설을 출간하며 참신한 상상력과 따뜻한 이야기로 독자의 사랑을 받아 온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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