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늘 물이 좋았다. 정확히 왜인지는 기억을 더듬어봐도 잘 모르겠다. 인어공주 때문에? 아니면 난 어렸을 때부터 파랑색이면 다 좋아했기 때문에 바다와 물이 그냥 파래서 좋았을 수도 있다(진짜로 오직 파랗단 이유로 물포켓몬을 좋아했다). 여튼 계기가 불명확한데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처음으로 엄마에게 무언가 배우고 싶다고 말한 게 수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8살 때 처음으로 동네 수영장에 가게 되었다.
그 때 수영을 배웠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숨참기 시합을 하고, 물 속에서 구르기 등등 벼래별 장난을 친 건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당당하게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해놓고 은근히 그 때 당시의 나에게 깊은 물을 무서워했다. 당시 수영장 레인의 앞 부분은 얕고 뒤로 갈수록 약 120cm 정도의 깊이가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때도 키가 작아서, 뒤로 가면 발이 땅에 닿지 않아 처음 합판 없이 수영을 하기 시작했을 때 너무 무서워서 엉엉 울었었다. 그래서 친구들 다 합판 없이 하는데 나만 혼자 계속 끼고 수영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나는 그 때를 잘 넘어 오리발까지의 과정을 마쳤다. 뭘까. 그새 키가 큰 건 아닐텐데 어쨌든 장하다.
그리고 한참도 아주 한참 뒤인 올해 8월, 띄엄띄엄 가던 필라테스가 지겨워지고, 갑자기 수영이 하고 싶어졌다. 주변에 수영을 좋아하고 잘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은연중에 그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생일선물로 친구들에게 수영복, 수영모, 물안경, 가방까지를 망라한 수영종합선물세트를 받고 동네 문화체육센터로 강습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바빠서 좀 빠지기도 했지만 여튼 이제 접영 발차기를 막 배우는 단계다.
접영은 이제 시작하는 수준이지만 너무 힘들어 보이는 게 겁이 나서 그런가 벌써 할 말이 많다. 도대체 어떤 변태가 이런 영법을 만든 건지 모르겠다. 수영이 아니고 차력 아닌지? 버터플라이 라는 이름조차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나비는 일단 바다생물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아직 자유형도 레인 끝까지 가면 숨이 차고 힘이 드는데 접영은 어떨런지 참으로 기대가 되는 바이다...
그래도 수영은 재미있다. 일단 잡생각이 싹 사라진다는 건 당연하고, 요새는 내가 점점 올바른 자세로 정확한 방향으로 팔다리에 힘을 줄수록 속도가 빨라진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물놀이처럼 아무렇게나 하던 때는 거뜬하고 가볍다고 느껴졌던 게 바르게 하려고 하니 힘이 든다는 점도 재밌는 일이다. 레인을 돌면서 이번에는 팔에, 호흡에, 다리에 등등 하나씩 신경을 써가며 해보는 것도 즐겁다. 동작에 신경 쓰면서 괜히 건실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뿌듯함마저 느끼고 있는 내가 웃기다. 이대로 쭉 재미있게 하다가 얼른 귀여운 오리발도 사고 싶다. 수영복도 하나쯤 더 사고 싶고.
'벼래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읽고 싶은 책들 (0) | 2020.02.28 |
---|---|
2020년 새해를 맞이하며 (0) | 2020.01.01 |
행복의 맛, 피자를 찾아서 - 비스마르크 여행기 (0) | 2019.11.29 |
또 이런 저런 수영 이야기 (0) | 2019.11.23 |
블로그를 시작하며 (0) | 2019.10.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