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늘 낯설고 내가 모르는 세상 속으로 나를 데려가 주는 외국을 배경으로 하는 책들을 좋아했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보다는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나 관심이 훨씬 커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는 시공주니어 책 시리즈 중 아스트린드 린드그렌, 로알드 달, 재클린 윌슨 작가의 책들을 엄청나게 읽었고 중고등학생 때도 세계명작 시리즈들을 위주로 읽었다. 한국 책도 당연히 여럿 읽었겠지만 토지를 엄청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고 그 외에는 분명 있을 것 같은데 당장 기억이 떠오르는 게 없다. 그만큼 흥미가 외국 작가의 책에 치중되어 있었던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잘 모르는 세계, 현실과는 유리된 세계로 갈 수 있는 게 좋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판타지소설을 엄청 좋아하게 되었다. 책이 주는 가장 큰 재미가 현실로부터의 도피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끝없는 이야기, 작은 백마, 타라 덩컨, 워터십다운의 열한마리 토끼 같은 책들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생 때 한 번 조선일보에서인가 상을 받았다는 한국 판타지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다. 하필 나랑 잘 맞지 않는 책을 골랐던 것인지, 실망한 나는 무척 적은 표본을 바탕으로 한 이상한 결론을 내려버리고야 말았다. 외국 작가가 쓴 소설 속 청소년들은 세상을 구하고 있는데 한국 작가가 쓴 청소년은 아무것도 못하고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 혼자 편견을 강화한 채 나는 한국 소설과는 한발 더 멀어졌던 것 같다. 여튼 이런 사소한 사건에 더해, 수능공부를 하면서 접한 각종의 한국 근현대 소설들이 아주 구질구질하기도 했어서 그런지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딱히 한국 소설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나는 내가 사는 소설이나 여타 다른 글 속에 담긴 내가 사는 이 사회가 궁금하다. 그리고 우리 현실, 내가 발 딛고 사는 이 곳을 그려내는 이야기가 주는 재미가 정말 크다는 것을 요새 읽은 책 몇 권을 통해 깨닫고 있다. 왜 이제야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의문이 생길 지경이었는데 이 글을 쓰며 돌아보니 내가 매우 편협한 취향과 생각 속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재미있고 신이 나는 걸. 이 지겹고 괴롭지만 친근한 내가 사는 현실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각종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출퇴근 시간의 고단함도 줄여주는 것 같다.
요새 한국 소설을 포함한 각종의 책들에 관심이 생기는 것은 일차적으로 나의 시각과 이야기를 비추어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많아진 게 아니라 그동안 외면했거나 책을 아예 읽지 않았던 내가 이제 발견한 탓도 클 것이다. 요새는 정말 여성서사를 골라잡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많아져서 굳이 어떤 책을 여성 작가가 썼다거나 여성이 주인공이라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만 그래도 여전히 이건 중요한 점이다. 나는,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세대는 여전히 교과서에서 남성 작가의 글을 위주로 접하며 자라고 있으니 말이다 - 나는 대학 전공수업에서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의 성비를 조사해본 적이 있고 결과는 당연히도 처참하다.
어쨌든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기존의 독서 습관을 탈피해서 한국 작가, 특히 여성 작가의 책을 더 많이 접하려고 한다. 생각만 하다보니 실제로 읽게 되지가 않아서 작은 목록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출퇴근길이 다소 긴 만큼 그 시간들을 활용해서 아래의 목록들을 하나씩 천천히 읽어보려고 한다. 목록은 생각날 때마다 더해볼 예정이다. (막상 적어보니 그리 많지도 않네)
목록
- 보건교사 안은영
- 목소리를 드릴게요
- 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
- 아무튼 예능
- 아무튼 비건
-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출근길의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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