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싶은 일상

210409 반차란 이런 때 쓰는 것이다

EBU_이지 2021. 4. 1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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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회사일이 나름 평안하다. 곧 또 일이 많아질 것 같기도 하고 부서 옮길 텀도 되어서 이 안정적인 나날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이 얘기는 다른 글에서 더 쓰도록 하고, 여기서는 오랜만에 반차를 쓰고 보물같은 날씨를 즐기며 느낀 행복감만 주욱 늘어놓아보려고 한다. 

 

동기들이랑 점심을 먹고 나오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이제 집에 가자"다. 약간 밈같은 거다. 밥 먹고 나왔으면 회사로 돌아가지 말고 집에 가야 된다. 현실은 그러지 못하지만.. 근데 오늘은 휴가를 써서 진짜 진짜로 그럴 수 있었다. 같이 밥 먹은 동기들이 진심으로 부러워해서 너무 웃기고 또 아련했다. 나도 그 마음 너무나 공감하지... 즐거운 주말들 보냈길. 여튼 밥을 먹고 근처 쇼핑몰에 들러서 잠깐 옷 구경을 하는 것으로 휴가를 시작했다. 뭐 건진 건 없고. 

 

1. 별안간 칼림바에 미쳐서 낙원상가에

 

말 그대로다. 요새 칼림바에 미친놈이 됐다. 이것도 다른 꼭지에 쓰겠지만. 암튼 처음에 반차를 내고 어디에 가볼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곳이 낙원상가였다. 온갖 악기, 특히 기타의 천국같은 곳인데 칼림바도 나름 목재로 만드는 악기라서 조금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 칼림바는 너무 대중적이지 않은 악기이고, 유튜버나 여러 리뷰들을 돌아보면 매장에서 산 것이 아니라 온라인 구매가 거의 99%에 가까워 보여 낙원상가에 종류가 많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혹시나 가면 지금 나한테 없는 모델인 플레이트 모델을 보고 소리나 한 번 들어보면 좋겠다 정도의 마음으로 낙원상가로 향했다.  

 

아.. 생각해보니 사진 한 장도 찍지 않았는데 그만큼 칼림바는 그냥 낙원상가에 없다고 보는 게 낫다. 칼림바에 관심을 갖게 되면 인터넷상에서 접하는 유명한 브랜드 중에는 네코즈/링팅/루아우/하루/게코 등등이 있는데 이 중 아무것도 없다. 루루랑 고퍼우드 모델만 조금 봤고.. 약간 듣도 보도 못한 모양의 사운드홀을 가진 어쿠스틱 칼림바만 몇 개 진열되어 있는 수준이다. 루루 플레이트라도 만져볼까 싶어 가게 밖에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나같은 여자 두분이 칼림바를 보고 싶어 하시길래 따라 들어갔다. 그래서 루루 플레이트 음계 한 번 쳐봤는데 무게는 괜찮고 끝음까지 소리는 잘 났는데 소리가 뭐 그닥 특색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칼림바 한 번 만져봤네 하는 감상을 가지고 산책을 하러 나섰다. 낙원상가에 올 때부터 구경하고 궁에나 가볼까 했었는데, 역시나 날씨가 너무 좋아서 냅다 창경궁으로 걸었다. 중간에 방향을 잘못 확인해가지고 한참을 돌아가기는 했다만.

 

2. 창경궁 산책

 

날씨 좋은 날 서울 한복판에서 옛 궁궐을 걸을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 같다. 펼쳐진 소나무가 주는 풍경부터가 왠지 2020년대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 그 어느 시절에는 가장 치열하고 피바람이 불던 정치적인 장소가 이제는 날씨와 평화를 느끼러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니. 아무튼 현대에 사는 나는 좋았다. 아니 요새는 궁에 들어가려면 그냥 교통카드 찍듯이 입장하는 곳에 카드만 뿅 찍으면 되더라고. 천원과 편리함의 행복이다. 빨리빨리의 한국인다운 궁궐 입장 서비스. 

 

 

하늘 좀 봐봐라...요새 계속 주말마다 비가 오고 진짜 직장인 서럽게 굴더니 이번엔 아주 화창했다. 하늘을 즐기면서 그냥 발 닿는 대로 아무데나 걸었다. 지도 없이 그냥 아무데나. 

 

 

철쭉이 많이 피었더라. 철쭉은 옛날에 어렸을 때 살았던 일산 빌라단지에 많이 피어있었어서 뭔지 모르게 그냥 정겹고 친숙하다. 아니 근데 걷다보니까 예전에 H랑 다른 궁궐 놀러갔을 때 보고 싶었던 호수!가 짜잔 나타났다. 

 

사람이 초록과 물을 봐야 산다고(누가)... 사진에 보정이 하나도 안 들어갔고 갤럭시8이고... 그래서 별로 색감이 뛰어나보이진 않지만 얘들아... 보니까 진짜 마음이 탁 트이고 평화가 찾아오고 어? 그랬어... 하... 그래서 이 앞에서 마스크샷도 찍고 마스크 벗고서도 오랜만에 셀카를 한참 찍었더랬다. 올 초까지만 해도 셀카 찍기가 조금 거북했는데 요새 운동 시작하고 정신건강이 좋아져서 그런가 행복감이 느껴지는 내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나에게 즐거운 일을 많이 만들어주어야지. 

 

 

호수를 따라 길을 걷다보니! 호수 앞 꽃나무 밑에 자리잡은 너무 귀여운 삼색이를 발견했다. 풍류를 아는 고양이로소...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조는 모양이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저 앞에 앉아 있었더랬다. 

 

 

아니 근데 애옹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내 옆자리에 화서 털썩 눕는게 아니겠어? 너무 귀여워서 만져주었더니 막 내 손에 박치기를 해주고 너무너무 귀여워서 혼절하는 줄 알았다.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어느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고양이를 부르며 밥을 주셨다. 알고보니 요 아이 밥 챙겨주시던 분이었다. 해주시는 말씀 들어보니 중성화도 해주신 것 같았다. 삼색이가 한참 식사중인데 갑자기 대굴빡과 덩치가 이만큼 큰 누가봐도 대장같은 치즈애옹이가 나타났다. 고양이 둘의 등장에 너무 행복해가지고 미처 사진도 못찍었는데 이 친구도 덩치만 산만했지 너무너무 순했다. 자꾸 아주머니와 내 다리에 몸을 부비고 만져달라고 해서 한참을 행복감에 취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아주머니께서는 다른 고양이들 밥 챙겨줘야 한다고 떠나시고 나에게 츄르간식을 삼색이한테 줘보겠냐는 권유를 하셔서 내가 영광스럽게도 애옹이 츄르를 챙겨줘볼 수 있었다. 너무 행복했어.... 최고의 날이야...

 

 

아쉽게 고양이들도 떠나가고 나도 일어나서 궁궐을 더 걸었다. 보니까 곳곳에 애기고양이들이 많았다. 다들 너무 귀엽고 사람들도 고양이 귀여워하느라고 군데군데 몰려있고 그랬다. 다 똑같아. 햇살 맞으러 산책 나왔다가 귀염둥이들 보고 좋아하고. 너무 평화로운 광경이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서 음악을 못들은게 조금 아쉬울 정도로. 요새 반도네온 연주자인 고상지님을 알게 되었는데, 새 앨범이 너무 좋아서 출퇴근길에 이 앨범만 주구장창 반복해 듣는다. 그걸 듣고 싶었는데 쬐금 아쉬웠어. 

 

 

궁에서 나와서 그냥 집에 편하게 가려고 혜화역으로 쭉 걸어왔다. 그런데 반가운 얼굴을 만났지 뭐야. 너무너무 생일 축하하고. 계속계속 봄이면 기억날 것 같다. 좋은 기억으로. 

 

 

 

3. 마지막엔 집 근처 스타벅스로

 

스벅에서 딸기 요거트 딜라이트인가? 여튼 상큼한 음료를 하나 주문해서 마셨다. 상큼하고 맛있더라. 오늘같이 기분도 산뜻한 날 마시기 좋았다. 예스24 북클럽의 천개의 파랑이 들어왔길래 그거 보고 싶었는데, 와이파이 상태가 안 좋아서 그냥 미리 받아뒀던 재윤의 삶을 잠깐 보았다. 그냥 오늘의 평화로움이 너무 좋아서 새삼 이런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어졌다. 맛있게 점심 먹고, 옷 구경도 잠깐 했다가 낙원 상가도 가고 창경궁에 가서 고양이 구경 하고 카페 와서 책도 봤는데 이게 한나절도 아니고 거의.. 반나절만에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에 퇴근 시간으로 붐비기 전 6시에 골인 했다. 오랜만에 가진 나 혼자만의 시간이라 꼭 이 감흥이 가시기 전 기록해두고 싶었다. 

 

 

그리고 새삼 드는 생각. 요새 운동하고 체력이 많이 좋아져서 이것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때 같았으면 기운이 없어서 그냥 곧장 집에 가서 누워있었을 거야. 올 초에만 해도 근력이 너무 없어져서 조금만 걸어도 허리가 쑤셨다. 근데 어제는 만오천보를 넘게 한시간 반을 걸었는데도 발바닥만 좀 피곤하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아주 건강해졌기보다는 체력/근력이 원래 필요했던 정도로 올라온 것이겠지만.

 

아무튼. 모든 것이 완벽했던 주말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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